모처럼 편안한 호흡으로 걸을 수 있는 날씨가 찾아왔다. 유난히 긴 여름, 기록적인 폭염, 잠들 수 없는 열대야 등 어디론가 빨리 도망치고 싶던 8, 9월이 지나고 청명한 공기와 탁 트인 하늘, 아름다운 가을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느리게 걷고, 느리게 먹고, 느리게 마시고, 느리게 읽으며 삶을 관조하고 싶다.

 

이탈리아에서 1986년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에 반기를 들고 슬로푸드 운동이 본격화된 것도 아마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뒤이어 이탈리아 움브리아에서 슬로시티 운동이 퍼져나가게 되었고 이와 함께 움브리아는 전통보존, 생태주의 등을 표방하는 슬로시티와 딱 어울리는 내추럴 와인의 성지가 되었다. 특히 전통에 회귀한 양조법으로 이탈리아 내추럴 와인의 성자로 불리는 다닐로 마르쿠치(Danilo Marcucci)가 선택한 티베리는 내추럴 와인의 빅스타로 떠올랐다.

 

글 최정은 사진 및 자료 제공 비노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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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리의 올드배럴

 

움브리아의 영혼을 담은 내추럴 와인, 티베리

 

이탈리아 움브리아는 이탈리아 반도 정중앙에 위치해 이탈리아의 주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바다와 접해 있지 않은 내륙지역으로 아펜니노 산맥이 지나 그림 같은 자연 풍광을 자랑하며 이탈리아의 푸른 심장으로도 불린다. 티베리는 움브리아주 몬테페트리올로(Montepetriolo)에서 4대째 이어지는 가족 경영 와이너리로 현재는 할아버지인 체사레(Cesare Tiberi)가 대표를 맡고 있으며 손자인 페데리코(Federico)가 운영하고 있다.

 

해발 350m 고도에 위치한 3.5ha 면적의 소규모 포도밭에서 150년 수령의 칠리에지올로(Ciliegiolo), 가메 데 트라시메노(Gamay de Trasimeno), 카나이올로(Canaiolo), 그레케토(Grechetto), 트레비아노(Trebbiano) 등 움브리아의 토착 품종들을 재배한다. 할아버지 체사레 때부터 움브리아의 토착 품종을 지키고 보전하며 150년 가까운 올드바인으로 길러낸 티베리였지만, 포도 생산 후 대형 와이너리나 상인들에게 판매했을 뿐 양조는 직접 하지 못하고 있었다. 토착 품종보다는 국제 품종을 선호했던 시장 상황에서 경쟁력을 찾기 어려웠고, 와인 상인들로부터 오래된 나무들에 샤르도네를 접목하라는 조언을 듣기도 했지만, 티베리는 이에 응하지 않고 움브리아의 유산인 토착 품종을 지키고자 했다. 그러던 중 2012년 초 다닐로 마르쿠치가 티베리 포도원을 방문하고 이곳의 독특한 떼루아와 오래된 움브리아 토착 포도나무들의 건강한 활력에 감명을 받아, 현대 기술 없이 와인을 양조하는 방법을 가르치게 되었다. 야생 효모로 발효하고 이산화황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양조에 훨씬 더 많은 노력을 요하지만, 티베리와 같은 소규모 형태의 농원에서는 효과가 있었고, 특히 가족 모두가 헌신적으로 포도밭을 가꾸고 함께 일하는 티베리에 너무나 잘 맞는 방식이었다. 그의 지도에 따라 2015년 빈티지가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고, 티베리는 빠르게 이탈리아 내추럴 와인의 신진 스타로 자리매김하였다.

 

티베리의 토양은 바위가 많고 편암과 이회토, 석회석이 풍부한 갈레스트로 토양(galestro soils)으로 와인에 미네랄과 과일의 향이 강조되는 대담한 풍미를 주며, 상당한 깊이와 활기찬 산도를 부여한다. 또한 완벽한 남서향에 암석이 많은 토양에는 건조한 지중해 바람이 불어와 와인은 진하고 매콤하면서도 소박한 뼈대를 가진 스타일을 갖추게 된다.

 

4대에 걸쳐 포도원과 토지 경작에 헌신해온 가문의 5세대로 자라날 아이가 포도원에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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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힘, 티베리 와인

 

현재 경영을 담당하고 있는 페데리코와 부인 알레시아의 집은 포도원의 가운데 위치해 여러 각도에서 포도밭을 관망할 수 있다. 매일 포도원과 지하의 와인 저장고에서 일하며, 일손이 부족한 수확과 병입 시기에는 다른 가족이나 친구들의 도움도 받는다. 누구보다 끈끈한 가족간의 유대감은 와인의 이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티베리의 대표적인 와인인 일 무스티코는 페데리코가 프랑스 태생의 어머니에게 헌정한 와인이다. 모기라는 별명은 어린 시절 깍쟁이 같이 톡톡 쏘는 모습에 외할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붙여준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에 관사를 사용하지 않는 움브리아의 방언을 사용한 엘 비앙코와 엘 로쏘. 가족이나 친구처럼 식탁에 늘 함께 물처럼 마실 수 있는 와인들이며 특히 로쏘는 차갑게 칠링해서 마셔도 좋은 스타일이다. 피스타렐로는 오렌지 와인으로 이름은 체사레가 양조할 때 항상 사용하는 나무 막대 이름에서 따왔다. 여전히 티베리에서는 할아버지의 피스타렐로를 압착과 파쇄 과정에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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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리 와인 리스트

 

 

❶Tiberi Il Mustico 티베리 일 무스티코

산지 이탈리아 움브리아 / 품종 가메 데 트라시메노 50%, 칠리에지올로 50%

시음노트 사랑스러운 체리 로제 컬러의 펫낫 로제 와인. 산딸기, 체리, 갓 짠 과실 주스의 프레쉬함과 신선한 과실미가 느껴지고 뒷 맛엔 견과류의 고소함까지 전해진다. 약발포성으로 경쾌한 버블이 가볍게 올라와 입 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❷Tiberi `l Bianco 티베리 엘 비앙코

산지 이탈리아 움부리아 / 품종 그레케토, 트레비아노

시음노트 금빛이 감도는 노란 빛 와인. 망고, 살구, 복숭아, 자두의 신선한 과실 풍미. 레몬, 건초, 야생화의 아로마가 느껴진다. 짭쪼름한 느낌의 미네랄과 견과류의 힌트와 입맛을 돋우는 감귤류의 산미 등 풍부한 과실향으로 시작해 상큼하고 부드럽게 마무리 된다.

 

❸Tiberi La Torre Rosso 티베리 라 토레 로쏘

산지 이탈리아 움브리아 / 품종 가메 데 트라시메노, 칠리에지올로, 카나이올로

시음노트 루비 빛의 레드 와인. 체리, 레드 베리 등의 풍성한 아로마. 그 중 체리와 매실의 힌트가 돋보인다. 신선하면서 잘 익은 과실미가 매력적이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적당한 바디감과 구조감으로 마시기 편한 와인이다.

 

❹Tiberi Pistarello 티베리 피스타렐로

산지 이탈리아 움브리아 / 품종 트레비아노에 그레케토, 베르데호 소량 블렌딩

시음노트 천연 꿀처럼 소박한 감성의 오렌지 빛. 자몽과 시트러스, 오렌지 껍질의 싱그러운 향에 은은한 나무향과 숲 내음이 어우러진다. 드라이하고, 활력 있는 산미와 함께 마일드한 탄닌감이 풍미를 한층 짙게 더해준다.

 

수입사 비노파라다이스 02-2280-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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