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 전통주 칼럼니스트 사진 박순욱, 다농바이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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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농바이오는 2020년 7월에 설립한 지역특산주 양조장이다. 양조장 이름은 ‘다양한 농산물을 원료로 술을 빚겠 다’는 의미다. 바이오는 술의 발효를 도와주는 미생물을 뜻한다. 다농바이오는 양조장이 자리한 충주에서 나는 쌀과 물, 그리고 발효제로만 술을 빚는다. 첫 제품은 거의 3년이 지난 2023년 2월에 나왔다. 알코올 도수 25도인 증류주 ‘가무치’가 그것이다. 세계 최고가 증류장비인 독일 코테(KOTHE)산 증류기로 내린 원액을 6개월 옹기숙성을 거쳐 만든 이 술은 사과, 배, 달콤한 쌀향이 느껴지는데 다 목넘김도 부드러워 출시되자마자 전통주 매니아들의 주목을 끌었다. 연이어 나온 가무치 43(알코올 도수 43도)은 글로벌 명성을 단번에 얻었다.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주류품평회인 IWSC(영국)에서 역대 국내 주류 중 최고점인 98점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다농바이오라는 신생 양조장을 급성장시 킨 술은 따로 있다. 이 양조장은 2024년 한해동안 오크통소주 10여개 제품을 한정판으로 내놓았고, 이 제품들은 온라인시장에 내놓기가 무섭게 완판됐다. 2023년 2억5000만원이던 회사 매출이 작년 엔 네 배인 10억원까지 올라간 건, 오크숙성 소주 덕분이었다.

 

작년 실적에 크게 고무된 영향일까? 올해는 더 큰 사고(?)를 치기로 했다. 보리로 만드는 위스키와 달리, 국내산 쌀로 만든 술이지만, 위스키와 정면 승부를 걸기로 했다. 일반 위스키와 비슷한 용량인 700ml 병에 오크숙성 소주를 담아 내놓기로 한 것이다. 새 제품 이름은 ‘수록’, ‘물사슴’이란 뜻이다. 이달 6일 출시된다.

 

다농바이오 술들은 증류 전에 발효과정을 거친다. 쉽게 말해 먼저 쌀 막걸리를 만들고, 이를 증류한다.
항아리에 숙성한 술이 가무치, 오크통에 숙성한 술이 수록이다.

 

 

숙성실에 빼곡히 쌓여 있는 오크통들.
현재 다농바이오에는 700개의 오크통이 있고, 올해부턴 매년 300개씩 더 들여올 예정이다.

 

다농바이오의 항아리 숙성 용기들. 항아리 숙성을 거친 술은 곡물 특유의 향이 잘 살아있다. 바닐라, 사과향이 난다.

 

 

“항아리 숙성 제품명을 가무치로 한 것은 토종 민물고기인 가물치가 갖고 있는 강한 생명력, 적응력의 의미를 살리고 싶어서였다. 이번에 새로 나올 술 이름을 수록으로 정한 것은, 술의 형태가 오크숙성을 통해 전혀 다른 술이 됐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무치나 수록 두 제품은 모두 물과 관련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술에 있어 물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강조한 것이다.” 다농바이오 한경자 대표의 설명이다.

 

양조장 방문은 2023년에 이어 두번째다. 그동안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오크통이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지게차가 수시로 오크통을 옮기느라 분주히 숙성실을 오가고 있었다. “현재 오크통은 700여개에 이른다. 매년 150개씩 들여왔고, 올해 는 두 배인 300개를 수입할 예정이다. 거의 다 술로 채워져 있다. 현재는 200l(리터) 용량의 오크통이 대부분이다. 오크통도 한 종류가 아니라 포트와인, 쉐리와인, 버번 위스키, 레드와인 등 다양한 술을 숙성했던 통들이다. 충주산 쌀과 물로 만든 우리 술이 어떤 오크통에 담아야 최고의 품질이 나오는지 계속 실험 중에 있다.”

 

다농바이오의 한경자 대표, 아래로 토니 포트 오크통이 보인다.

 

 

 

오크통별로 내놓은 오크소주, 작년에 완판 행진

다농바이오는 법인 설립 후 작년에 가장 바쁜 한해를 보냈다. 2~3년전부터 오크통에 숙성해온 쌀소주를 375ml 용량에 담아 리미티드 에디션(소량 한정판)으로 여럿 내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게 예사롭지 않다. 숙성에 쓰인 오크통별로 제품을 내놓았다. 이른 바 ‘싱글 캐스크(같은 종류의 오크통을 사용한 원액만으로 만든 술)’ 제품을 출시한 것이다. 그 오크통 이름을 잠시 나열해보자. 포트 캐스크, 아몬티야도 쿼터 캐스크, 마데이라 캐스크, 토카이 캐스크, 올로로소 쿼터 캐스크, 버번 캐스크, 토니 포트 캐스크 피니쉬 등등 위스키가 대표적이지만, 오크통 숙성 술은 어떤 오크통을 쓰느냐가 품질을 좌우한다.

 

오크가 머금고 있는 특유의 색과 향이 고스란히 통 안에 들어 있는 증류원액에 배여 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숙성 기간도 짧지 않다. 짧게는 3~4년, 길게는 수십년을 오크통에서 숙성을 거친 술은 본래의 맑고 투명한 색을 잃고, 오크통의 검붉은색, 호박색을 띤다. 또 그 향은 말할 것도 없이 오크통 영향이 절대적이다. 잘 만든 위스키에서 시가, 바닐라, 말린 과일, 견과류 향들이 느껴지는 것은 숙성용기인 오크통에서 비롯된다.

 

 

작년에 비매품(NOT FOR SALE)이란 이름으로 출시된 오크소주들. 인터넷에 상품을 올리자마자 완판됐다.

같은 오크통별(싱글 캐스크)로 제품을 만들었다.

 

 

가격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 전달하고자 ‘NOT FOR SALE’ 이름 붙여

다농바이오는 숙성 오크통별로 출시한 오크소주 들을 온라인(지역특산주는 온라인 판매 가능)에 출시하자마자, 1~2분만에 다 판매하는 진기록을 작년 한해동안 이어갔다. 그런데,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이 오크소주에 ‘비매품(NOT FOR SALE)’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판매용으로 출시한 술 이름이 비매품 이라니? 이상하지 않나. 한경자 대표의 답변이다.

 

“오크통 숙성을 1년 반 정도 했을 때부터 여러 주류행사에 갖고 나가, 시음 행사를 했다. 당시는 출시 전이니, 당연히 비매품이었다. 아직 판매 준비가 안된 술이었고, 동시에 값으로 매겨 판매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술이기도 했다. 2년 6개월 숙성이 끝난 작년에야 출시를 했지만, 비매품을 갖고 나와서라도, 고객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었던 우리의 비전, 값이 매겨지는 상품 그 이상의 가치를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서 ‘NOT FOR SALE’이란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다농바이오 한경자 대표

 

 

다농바이오의 2025년은 새 제품 ‘수록’으로 시작한다. 동일한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원액별로 제품을 출시했던 작년과 달리, 수록은 세 가지 타입의 오크통에서 숙성한 원액을 블렌딩했다. 알코올 도수는 59도. 물 타지 않은 ‘캐스크 스트랭스’다. 다양한 캐스크(오크통)를 사용한 까닭으로, 부드럽고 달콤한 첫 인상에 이어 은은한 우디함과 말린 과일, 허브류의 여운이 이어지는 제품이다. 한 대표는 “수록 출시 전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수차례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해본 결과, 위스키를 좋아하는 분과 전통주를 좋아하는 분 구분없이 수록에 대한 평가가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화이트 스피릿은 가무치, 오크숙성 증류주 이름은 수록

다음은 한 대표와의 몇가지 일문일답.

 

 

올해 오크숙성 술(수록)을 새로 내면서 기존 브랜드명인 가무치와 달리 한 이유는?

“다농바이오는 오랫동안 ‘가무치’라는 이름으로 증류주를 만들어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크 숙성 제품군과 화이트 스피릿 제품군(항아리 숙성)이 전혀 다른 성격과 결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게 됐다. 가무치는 앞으로 화이트 스피릿, 즉 증류 원액 그대로의 맑고 순수한 술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운영하고, 오크 숙성 제품군은 완전히 새로운 이름으로 시작해 보자는 결정을 하게 됐다.”

 

 

오크숙성 술 브랜드 명을 수록으로 정한 까닭은?

“수록의 어원에는 ‘거두어 모은다’, ‘기록으로 남긴다’는 뜻이 있다. 동시에 ‘물사슴(수록)’이라는 생명력 있는 자연의 이미지도 함께 품고 있다. 우리가 빚는 술이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시간과 문화, 사람들의 기억을 모아 기록하는 하나의 매개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수록 용량을 위스키 사이즈인 700ml로 한 이유는?

“작년에 한정본으로 내놓은 오크소주들은 모두 375ml 사이즈였다. ‘술은 정말 좋은데, 용량이 너무 적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리고, ‘제대로 위스키와 붙어 보자’는 자신감도 약간 생긴 것 같다. 용량은 두배로 늘렸지만, 가격은 상대적으로 낮춰, 가급적 많은 분들이 맛볼 수 있도록 가격을 정했다.”

 

 

새 제품 수록은 어떤 향들이 특징인가?

“곡물(쌀)에서 우러나는 바닐라, 사과향이 있고, 오크통에서 연유하는 부케향으론 말린과일, 견과류 향들을 맡을 수 있다. 한 마디로 뾰족뾰족하지 않고 둥글둥글하다.”

 

 

다농바이오 직원들이 증류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이곳 증류기는 독일산 코테 (KOTHE) 장비로, 다단식(9단 듀얼) 증류기다.

 

 

독일 코테사 증류설비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나?

“초창기에는 전문가 도움을 받아서 증류를 했지만, 이제 4년차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쌓였다. 해서, 이제는 어떤 발효제(효모)를 쓰느냐에 따라 증류 원액 향이 얼마나 미세하게 달라지는 것도 증류작업에 반영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증류설비가 섬세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 술은 꼭 살아 있는 것 같다고 여긴다.”

 

 

발효제 중 전통누룩 연구도 하고 있나?

“그렇다. 충주에 특화된 지역 효모를 찾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전통 누룩 전문가인 한영석 명인(한영석 발효연구소 대표)도 찾아가, 자문을 받고 있다. 우리 술에 맞는 오크통을 찾는 실험이 계속 중인 것처럼 우리 술에 가장 적합한 발효제를 개발하는 것도 여전히 고민거리다.”

 

 

항아리 숙성 술은 여전히 나오나?

“물론이다. 가무치 43은 최고 권위의 국제주류품 평회인 IWSC(영국)에서 역대 국내 주류 중 최고점인 98점을 기록했다. 수록을 위시한 오크숙성 술은 오크통 물량 한계로 지속적으로 술을 내놓기는 어렵지만, 화이트 스피릿인 가무치(25,43)은 일년 내내 안정적 공급이 가능하다. 다농바이오의 스테디셀러 같은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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