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산 와이너리에서 바라본 주변 산 풍경

 

박순욱 전통주 칼럼니스트 사진 및 자료 제공 박순욱, 수도산 와이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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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산와이너리 와인체험관 내부. 방문객들이 와인 시음과 구매를 하는 곳이다.

 

서울 강남에서 차로 꼬박 4시간이 넘게 걸렸다. 잠시 휴게소를 들리긴 했지만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게다가 10여 km 남겨두고는 꼬불꼬불한 산길이 끝없이 이어져 살짝 현기증이 느껴지기도 했다. 해발 1300m 수도산 자락에 자리 잡은 수도산 와이너리를 그렇게 어렵게 찾아갔다. 수도산 와이너리는 산머루로 바디감 묵직한 레드와인을 만드는 한국 와인 양조장이다. 2023년 우리술 품평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양조장이다. 정부가 주관하는 우리술 품평회에서 한국와인이 대통령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이곳 수도산 와이너리 머루 포도밭에서 바라보이는 산이 한 둘이 아니다. 수도산(1317m), 가야산 단지봉(1327m), 황악산 형제봉(1022m), 삼방산(864m) 등이 이곳 와이너리를 호위무사처럼 둘러싸고 있다.

 

백두대간과 이어져 있는 가야산 자락이기도 한 이곳 수도산 와이너리는 머루 밭이 3000평, 포도밭이 2500평이다. 머루 밭 앞쪽이 동쪽이라 해가 가장 먼저 뜬다. 토양이 석회암층이어서, 암반이 많다. 그래서 양조용 포도를 키우기에 적합하다.

 

물이 부족해 뿌리가 땅밑 깊은 곳까지 자랄 수밖에 없어 흙 속의 양분 흡수가 잘된다. 돌 성분이 많은 성분이라 배수도 잘된다. 프랑스, 이탈리아 유명 와인산지를 빼 닯은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 김천의 유일한 와이너리이기도 하지만, 한국와인을 많이 생산하는 영동, 영천 어느 와이너리보다 유리한 토양 조건을 갖춘곳이 이곳 수도산 와이너리다.

 

 

수도산와이너리 백승현 대표(사진 오른쪽)가 2023년 우리술품평회 대통령삼을 수상했다.

수상작은 2019년 빈티지 크라테와인.

 

 

2023년 우리술 품평회에서 대통령상 수상 영예

김천 ktx 역에서 차로 한 시간이나 걸리는 오지인 이곳에 2023년 희소식이 전해졌다. 그해 농식품부가 주관하는 우리술 품평회에서 이곳에서 만든 와인이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상을 받았다. 한국와인 중에서 1등인 것은 물론, 막걸리, 약주, 증류주 등 출품한 전 종목의 술 전체를 통틀어 최고상을 수도산 와이너리의 2019년산 빈티지 ‘크라테와인’(미디엄 드라이)이 수상했다. 100% 산머루로 만든 한국와인이다.

 

그러나 입안에서 느껴지는 바디감이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유명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 못지않다. 산포도라고도 하는 산머루는 포도보다 열매 크기는 작지만, 당도와 산도가 높은 품종이다. 포도에 비해 칼슘, 인, 철분 등 각종 무기질 성분이 2~10배 많다. 특히, 항산화작용을 하는 폴리페놀, 안토시아닌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열매가 산머루다.

 

2007년 주류제조면허를 딴 수도산 와이너리 백승현 대표가 와인 이름을 ‘크라테(Krate)’라고 지은 것도 지역특성을 고려했다. 크라테라는 이름은 ‘화산 분화구’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크라테(Crater)에서 착안했다. 양조장이 있는 경북 김천시 증산면 지형이 분화구를 닮았기 때문이다. ‘C’대신 한국(KOREA)의 ‘K’를 써 한국와인이라는 정체성을 살렸다. K-팝, K-드라마, K-푸드 열풍이 불기도 전에 ‘K-와인’을 생각한 것이다. 백 대표가 크라테라는 이름으로 산머루 와인을 세상에 내놓은 것은 2008년부터다.

 

와인을 즐기는 분들이 흔히 갖고 있는 선입견 중 하나가 ‘한국은 여름철 비가 많이 와서 제대로 된 당도를 가진 와인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와인 중에는 발효 도중에 설탕을 보충한 제품들이 드물지 않다.

 

 

9월 중순에 촬영한 수도산와이너리 산머루 열매. 아직 다 익기 전이다.

 

 

한국의 아마로네 와인이라고도 불려

하지만, 크라테 산머루 와인은 가당(설탕 첨가)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알코올 도수가 12% 정도에 이른다. 외국산 와인과 비교해서도 알코올 도수가 손색이 없다. 우선은, 산머루가 일반 포도보다 당도가 높은 때문이기도 하지만, 크라테 와인의 높은 당도는 와인 양조자의 ‘땀과 정성’ 덕분이다.

 

산머루는 9월 중순, 9월 말이 수확기다. 하지만 수도산 와이너리는 양조용 산머루를 10월 말에나 따기 시작한다. 수확기를 의도적으로 늦춘 머루는 수분이 빠져나가, 열매가 쭈글쭈글한 모양이다. 수분이 달아난 만큼, 당도는 더 높아 결과적으로 당도 높은 머루로 와인을 만들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백승현 대표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우선, 당도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산머루 한 그루에서 생산하는 열매 양을 많이 줄였다. 응축된 포도(산머루)를 생산하기 위해 면적당 나무의 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한 그루 당 수확량도 2kg로 제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충분한 당도가 보장되지 않아 수확기에 머루를 따지 않고, 서리가 한두 차례 내릴 때까지 기다린다. 수분이 빠져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확을 한다.

 

그래서 ‘한국의 아마로네 와인’이라고도 불리지만, 크라테는 열매 수확 자체를 미루고 나무에 매단 채로 자연건조를 시키는 반면, 열매 수확 후에 건조시키는 아마로네 와인과는 다르다.”

 

 

10월 말에야 수확한 산머루 열매. 다 익은 지 한달이 지나 열매 표면이 쭈글쭈글하다.

 

 

아마로네는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토 지방을 대표하는 고급 와인이다. 수확한 포도송이를 대나무발 위에서 3~4개월 말려 수분을 줄이고 당도를 높인 뒤 발효한다. 이런 제조법을 아파시멘토(Appassimento)라고 하는데 알코올 도수가 높고 색이 진하며 강렬한 맛을 내는 와인이 만들어진다. 한국와인 전문가인 최정욱와인연구소의 최정욱 소장은 “크라테 와인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아파시멘토 방식으로 와인을 만드는 것은 기후와 떼루아의 단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만드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설명에도 한가지 의문이 남는다. 산머루는 신맛이 강한데, 이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산머루, 오미자는 신맛이 아주 강하다. 이곳 김천에서 잘 자란다. 기본적으로 신맛이 강하지만, 수확 시기를 달리해서 발효를 통해 신맛을 낮추려고 노력했다. 가령, 설익은 열매를 따서 발효를 했을 때, 중간쯤 익었을 때, 완전히 익었을 때, 그보다 아예 수확을 늦춰 자연 농축시켰을 때 각각 발효를 하고 맛을 보니, 신맛의 정도가 다 달랐다. 산도가 높은 산머루도 농축을 시켜(최대한 수확 시기를 늦춰) 발효를 하니, 신맛이 훨씬 부드러워지는 것을 알게 됐다. 결국 산머루의 신맛을 줄이는 것과 당도를 높이는 것은 수확 시기를 늦춰 해결했다. 열매 수분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원료는 다소 줄어들지만, 그만큼 좋은 술이 만들어진다.”

 

수도산 와이너리 백승현 대표는 권투선수 출신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권투를 했다. 주니어라이트급 프로복서로 데뷔했지만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공식 전적 3전 2승 1패였다. 권투를 그만두고 보안업체 직원으로 일하다 서른을 앞두고 고향인 김천으로 돌아왔다. 1999년부터 부모님이 담배, 약초 농사를 짓던 땅을 갈아엎고 산머루를 심고 키우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일교차가 커서 산머루를 키우기엔 더없이 좋은 곳이다.

 

백승현 대표가 크라테와인을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산들은 크라테와인 라벨에 그대로 그려져 있다.

 

2004년부터 산머루로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백승현 대표 역시 시행착오를 겪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크통 사용법을 몰라 2009년은 한 해 와인을 다 버렸다. 새 오크통에 와인을 숙성시킨 탓에 오크향이 너무 강해, 와인으로서의 상품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2011년, 2012년은 작황 자체가 좋지 못해 오크통 숙성을 아예 하지 않았다. 백 대표는 “매년 와인을 만들지만, 품질이 떨어지는 해의 와인은 팔지 않고 소장만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크라테 와인은 한 달 남짓 스테인리스통에서 발효를 거쳐 30~36개월 오크통 숙성, 6개월 병입 숙성을 거쳐 출시된다. 산머루를 수확한 뒤 적어도 3년은 지나야 제품화한다는 얘기다. ‘기다림의 미학’이 크라테 와인이 아닐 수 없다.

 

 

장기 숙성 중인 와인

 

10년 뒤 음용이 최적, 장기 숙성 가능

그렇다면, 백 대표가 만드는 산머루 와인은 어떤 맛일까? 또, 어느 정도 지나야 음용하기가 가장 좋을까? 백 대표가 말하는 크라테 와인이다. “처음에는 흙 향, 풀 향이 난다. 숙성(3년간 오크통 숙성)된 와인인 만큼 코르크 오픈 후 1~2시간 후에 마시면 스파이시한 향, 블랙 자두, 장미향 등이 올라온다. 목 넘김 등 균형감이 아주 좋다. 빈티지(포도 수확연도) 기준으로 10년 정도 지나서 마시는 게 밸런스가 가장 좋다. 장기 숙성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백 대표의 또 다른 목표는 산머루 브랜디다. 머루 와인을 증류해서 10~15년쯤 숙성한 뒤에 머루 브랜디를 세상에 내놓을 생각을 갖고 있다. 그때쯤이면 포르투갈의 유명 주정강화와인인 포트와인처럼 머루 와인에 머루 브랜디를 블렌딩한 제품도 만들 작정이다.

 

적은 양이지만 몽골, 싱가포르에 와인을 수출하고 있는 백승현 대표는 “와인의 종주국인 프랑스에 크라테와인을 수출할날이 올 수 있도록 품질을 높여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이곳 와이너리의 연간 생산량은 3500병 정도에 불과하다. “양조과정을 기계화하면 생산량을 두배 이상 늘릴 수 있겠지만, 그럴 경우 와인 품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어, 크라테 와인 만큼은 앞으로도 수작업을 고수할 작정”이라고 말했다. 양보다는 철저히 품질로 승부하겠다는 백 대표의 경영철학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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