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 전통주 칼럼니스트 사진 및 자료 제공 박순욱, 전주이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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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강주 본사. 내년에는 본사 앞에 2층 규모 명인관이 새로 들어서 근사한 체험장이 선보일 예정이다.

 

 

정부가 88올림픽을 앞두고 전통주 제조 허가를 내준 술은 딱 3개다. 문배술, 안동소주, 그리고 이강주다. 원래 평양술이었던 문배술은 6.25 동란 때 남하해 지금은 경기도 김포에서 술을 빚고 있다. 고려 말기, 한반도에 첫 증류주로 등장한 안동소주는 지금도 안동에서 8개 양조장이 같은 이름으로 술을 빚고 있다.

 

문배술, 안동소주가 증류식소주인데 비해 전주이강주는 약소주다. 쌀발효주를 증류한 뒤 그 원액을 배, 생강, 계피, 울금 같은 부재료에 1년 정도 따로 침출한 뒤 다시 블렌딩해서 술을 완성한다. 다양한 부재료를 넣은 까닭에 쌀소주의 단조로움이 없다. 증류식소주에 없는 다양한 향들이 복합적인 풍미를 주는 술이 전주이강주다. 주세 법상으로는 리큐르에 해당한다.

 

전주이강주가 문배술, 안동소주와 다른 점은 또 있다. 전통주 중 유일하게 유럽에 직영영업점을 운영하고 있는 게 전주이강주다. 네덜란드와 영국 런던에 대리점을 두고 있다. 특히, 런던의 이강주UK(이강주 영국지사)는 한때 코 로나 영향으로 ‘개점휴업’할 정도로 판매에 애로를 겪다가 EPL(영국 프리미어리그) 득점왕(2021~2022 시즌)에 오른 손흥민 선수 덕분에 그간 재고를 한번에 다 팔기도 했다. 런던에 직영점을 둔 덕분에, 런던이 연고지인 토트넘 홋스퍼FC의 주전 손흥민 선수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전주이강주의 유럽시장 개척 영역은 영국, 네덜란드뿐 아니다. 2024, 2025년 2년 연속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프로바인(PROWEIN, 유럽 최대 주류박람회)에 참가해 유럽본토 시장 개척에도 열심이다. 전주이강주 조정형 회장은 “한류 열풍 영향으로 한인 식당이 유럽 어느 지역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생겨나고 있어 전통주의 동반진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이강주도 독일 현지 한인 주류유통업자와 손잡고 독일을 중심으로 동유럽 여러 국가에 진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2024 프로바인 행사장.

사진 왼쪽부터 조회장 둘째 딸, 조정형 명인, 허영삼 대표(독일 현지 주류유통업체), 이철수 사장

 

 

조정형 명인이 이강주의 핵심 원료인 배 작황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배, 생강을 부재료로 넣었다고 해서 이강주로 불려

전주이강주가 어떤 술인가? 이강주는 평양 감홍로, 전북 죽력고와 더불어 조선시대 3대 명주(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 기록) 중 하나다. 전통 쌀소주에 배와 생강이 들어갔다 해서 이강주라 불리게 됐다.

 

예전에는 약의 의미인 ‘이강고’라 불렸다. 알코올 도수 25 도의 약소주인 이강주는 배의 시원한 청량감과 알싸한 맛 을 내는 생강, 황금빛을 감돌게 하는 강황과 식물인 울금, 맵고 단 계피, 그리고 목넘김을 부드럽게 해주는 아카시아꿀이 어우러져 이강주만의 독특한 향과 맛을 낸다. 마신 뒤에도 숙취가 없는 고급명주로 통한다. 전통주 중에서도 가장 많은 부재료와 정성, (숙성)시간이 들어가는 술이다. 전주 이강주 25도는 숙성 기간이 1년, 이강주 38도는 숙성기간만 3년이 걸린다.

 

 

위: 전주이강주 제조와 관련된 다양한 서적들. 동국세시기 같은 고문헌도 보인다.

아래: 약소주인 이강주는 증류 전에 쌀막걸리 발효과정을 거친다.

 

 

전통주 중 제조과정이 가장 까다로운 술

이강주는 전통주 중 가장 만들기가 까다로운 술이기도 하다. 증류할 때의 술덧(증류할 때 넣는 발효주)은 일반 쌀약주와 차이가 없다. 백미와 누룩으로 막걸리를 빚어, 이중 맑은 부분(약주)만 걸러 증류주를 내린다.

 

화요 같은 소주 같았으면 제조공정이 여기에서 끝나지만 (숙성은 별도), 이강주는 여기가 제조의 출발점이나 다름없다. 증류주 원액을 항아리에 담아 네가지 핵심 부재료인 배, 생강, 울금, 계피를 각각 넣어 일년 정도 침출(부재료 성 분이 증류원액 속으로 배어 들어가는 과정)과 별도의 숙성기간을 거쳐 완성된다. 2014년에 새로 나온 이강주 38도는 주력 제품인 이강주 25도에 비해 부재료 함량이 월등히 많고, 숙성기간도 세배다. 그래서 가격도 몇배 비싸다.

 

이강주 38도 제품 출시 얘기도 재미있다. 조정형 명인이 중국, 러시아 출장을 갔을 때 경험담이다. “전주이강주 25도 제품을 팔아볼 작정으로 중국, 러시아의 주류유통업체들을 만났다. 그런데 현지에서는 어이가 없게도 25도 제품은 거의 음료수 취급을 하지 뭔가. 고량주, 보드카의 알코올 도수가 40~50도 정도이니, 그에 한참 못미치는 이강주는 술 대접도 못받은 거지.” 현재 이강주 38 도 제품은 전체 매출의 10% 정도 규모를 차지한다.

 

 

전주이강주 병입라인

 

 

세번 여과로 향과 맛이 더 조화로워져, 숙취도 없어

2014년은 이강주 38도 출시 외에도 전주이강주의 터닝포인트(전환점)가 되는 해다. 술 품질관리가 국세청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로 이관된 그해를 계기로 이강주의 제조공정이 다소 바뀌었다. 이전에는 술 색깔이 황금빛이고, 배같은 부재료 향이 도드라졌다면, 2014년에 나온 제품부터는 술 색깔이 맑은 투명색이고, 향도 다소 옅어졌다. 이강주에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차이는 여과(필터링)다. 이전에는 여과를 한번 했는데, 2014년부터는 3번 여과과정을 거친다. 여과를 한번만 하면, 시간이 꽤 지나면 술 색깔이 황금빛 에서 갈색(갈변현상)으로 바뀌기도 하고, 전에는 없던 작은 알갱이(배같은 부재료 침전물)들이 생기기도 한다. 소비자 불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여과를 3번 하고 나서부터는 이같은 컴플레인이 없어졌다. ‘맑고 투명한 술’을 더 선호하는 시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다.

 

술 사업을 오래 하니 알겠더라. 한국인의 입맛이 희석식 소주 도수 떨어지는 것 따라 변한다는 것을. 내가 소주회사 다닐 때는 소주 알코올 도수가 30도 안팎이었다. 지금은 16도 아닌가. 순한 소주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알코올 도수 높은 독주는 점점 버거워한다. ‘이강주 맛이 순해졌다’는 지적도 없진 않지만, 시대 흐름을 받아들인 것이다.”

 

 

전주이강주 8대 재료들. 왼쪽 위 배(시계방향), 생강, 아카시아꿀, 울금, 쌀, 보리쌀, 누룩(조효소). 가운데는 계피.

 

 

전주이강주 이철수 사장(왼쪽)과 조정형 명인이 이강주 도자기 제품과 금주전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그러나, 단 맛이 강하면서도 알싸한 여운을 주었던 이전 전주이강주에 향수를 느끼는 꾼들은 지금도 아쉽다. 황금빛에다, 목으로 넘길 때 다소 걸쭉한 느낌의 오리지널 이강주를 잊지 못한다. 그래서 필자는 이번 취재에 앞서 “이전 스타일의 전주이강주 38도 시음용 제품 한두병을 만들어줄 수 있냐”고 전주이강주 이철수 사장에게 부탁을 했다. 이철수 사장은 조정형 회장의 대학 후배로 20여 년전에 전주이강주에 입사, 현재 후계자 과정을 밟고 있는 ‘차세대 이강주 제조자’다.

 

그런데, 정말 오리지널 이강주(한번의 여과만 거친 시제 품) 맛을 보니, 부재료들의 개성이 훨씬 도드라졌다. 술 색상도 황금빛이어서, 시각적으로도 훌륭했다. 그러나, 이철수 사장의 반응은 다소 달랐다. 이 사장은 “술, 특히 증류주는 구입해서 바로 마시기 보다는 적게는 몇개월, 혹은 일년 이상 뒀다가 마시기 십상인데 이렇게 오래두면 처음의 황금빛이 갈색으로 변하고 향도 달라질 우려가 있어, 이전 제품을 다시 출시하기는 현재로선 어렵다”고 말했다. 필자는 앞으로도 시간을 갖고 이강주측에 설득을 더할 작정이다. 막걸리처럼 유통기한을 정한 ‘전주이강주 디 오리지널’을 한정판으로 출시해보자고.

 

 

전주이강주 2개의 같고도 다른 술. 왼쪽은 세번 여과한 38도 제품.

오른쪽은 한번만 여과한 미출시 제품으로, 색이 황금빛에 가깝고, 향도 훨씩 진하다. 여 과를 거칠수록 향도 걸러지기 때문이다.

 

 

전통주 해외진출에 길 터주기 위해 유럽시장에 교두보 확보

하지만, 조정형 명인(회장)의 관심은 딴데 있었다. 현재 국내 생산과 판매를 이철수 사장에게 맡기고 본인은 해외시장 개척에 힘을 쏟고 있다. 전주 이강주 연간 매출은 30억 정도다. 많다면 많은 금액이지만, 1000억 매출을 바라보는 화요같은 기업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실적이다.

 

1990년에 생산을 시작한 전주이강주는 2007년에 첫 제품을 내놓은 화요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뿌리가 깊다. 더구나, 조선 중기부터 선비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고 기록한 문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조 회장은 왜 유럽진출에 목을 매고 있는걸까?

 

현재 이강주의 유럽실적은 수치로 언급할 정도도 못된다. 당연히 해외부문은 수지타산(BEP)도 못맞추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다른 전통주에 비해서는 해외매출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내수에 비할 바가 못된다. 이 같은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조 회장이 수출에 큰 의미를 두는 이유는 과연 뭘까 궁금했다.

 

“1990년에 이강주를 생산할 때만 해도 전통주 업체가 한 손가락 개수도 못채웠지. 지금은 어떤지 잘 알잖아. 수백개가 넘어. 시장 규모에 비해 많다는 생각은 들지만, 어쩌겠어. 젊은 사람들이 전통주가 좋아서 양조장 사업에 뛰어들겠다는데 말릴 수도 없고. 이들보다 훨씬 먼저 사업을 시작한 나같은 사람은 이제는 내수를 더 키우기보다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해외진출에 앞장서는 게 맞다고 봐.

 

오크통에 숙성하지 않고도 다양한 향이 나는 이강주 같은 술은 외국에도 별로 없어. 운이 좋아, 또 노력 덕분으로 이강주가 유럽에 탄탄한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면, 여러 전통주들이 뒤따라 오기가 쉽지 않겠어. 그래서 국내서 번 돈을 해외에 투자하는 거지. 유구한 역사를 가진 한국술을 수출하는 것은 한국문화를 해외에 널리 알리는 것과 마찬가지야.”

 

 

조정형 명인이 이강주 달항아리 제품 세트를 소개하고 있다. 한정판 제품으로 완판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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